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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다빈씨네 영화방 <유산>

: 남순아 감독 인터뷰


남순아 감독의 단편 호러 <유산>은 오랫동안 병간호한 엄마가 돌아가시고 집을 물려받은 효은(한해인)의 이야기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단연 의문의 머리카락이 넝쿨처럼 사방에 펼쳐진 안방이 등장하는 장면인데, 이때 효은 외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부분을 눈여겨 봐야 한다. 엄마에 대한 딸의 공포심은 개인적 차원의 히스테리를 넘어, 사실은 누구든 목격할 수 있는 일종의 공포 상황이라는 점을 <유산>에서 확인할 수 있다.

CJ문화재단의 스토리업 제작지원을 받은 후 수상이 이어지고 있어요. 많은 분이 궁금해할 영화를 미리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산>의 첫 시작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호러 장르를 써보고 싶었어요. 제작 지원받기 전부터 쓰던 시나리오에도 주인공 딸이 엄마와 맺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엄마를 보살피는 딸과 자신을 보살피기 싫어하는 딸의 마음을 알고 있는 엄마의 이야기였어요. 저희 부모님도 나이가 드시니 할머니를 어떻게 모셔야 할까 고민하는 상황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계속 돌봄 노동에 관한 고민을 하며 이야기를 쓰게 됐습니다.

<유산>으로 인터뷰했던 기사를 찾아보니 “K-도터(딸)”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감독님 생각에 “K-도터”는 무엇일까요?

그 말은 기자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선택한 단어였던 것 같아요. K-도터라고 하면 ‘책임감’이 가장 크게 떠올라요. 다양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남의 책임감과는 또 되게 다른 것 같거든요. 모든 걸 서포트 해내고 감내하는 책임감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합니다.(웃음)


모녀 관계도 서로의 생애주기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딸인 효은(한해인)이 결혼할 무렵에 엄마가 다치게 됐다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당연히 변화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엄마가 아이를 낳고 키우지만, 점점 자라면서 자녀에게 기대하게 되는 감정들이 생겨나니까요. 효은 같은 경우는 마치 엄마의 엄마가 된 입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감정적인 기대와 엄마를 보살펴주는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결혼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결혼은 어떤 큰 문제 없이 자연스럽게 벗어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죠. 흔히 여자가 혼자 독립을 하면 ‘왜 그렇게 해야 하냐, 위험하게’ 이런 식으로도 생각하는 것 같아요. 효은이 같은 경우는 엄마와 최대한 갈등을 빚지 않으려는 캐릭터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효은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한 방법이 결혼이었습니다.


“엄마가 혼자 있기 싫어서 그래” 이런 대사가 나와요. 효은이 죽은 엄마의 숨소리를 듣고 공포에 떨면서 하는 대사인데, 사실 딸로서 많이 공감됐어요. 감독님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었을까요?

저는 사실 예전에는 좀 그렇게 엄마와 복잡한 관계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심플해진 것 같아요. 물론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소위 ‘엄마’라는 역할에 기대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제가 누구를 케어하거나 사랑하기가 너무 힘들 것 같기도 해요. ‘나 같은 사람이 엄마가 되면 어떤 파국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도 농담으로 좀 했던 것 같고요.(웃음) 꼭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어도 ‘엄마’와’딸’이라는 위치와 관계에 흥미로운 지점이 많잖아요. 이 한국 사회,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너무나 이렇게 매끄럽게 문제없이 보이기 위해서 이렇게 억눌려 있었던 존재들이니까요. 그게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상도 인상적이었어요. 영화 속 여성을 전통적으로는 성녀와 마녀로 구분된다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영화라는 매체 속의 여성을 비유한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저희 미술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내주셨어요. 영화에서 엄마 역할인 배우분이 등장하지만,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아요. 고민하다가 천주교에서 모든 고난을 견뎌내는 성모 마리아처럼, 효은의 엄마도 자신을 성모 마리아에 감정 이입을 하면서 고난을 견디지 않을까 생각하며 영화에 배치하게 되었습니다. 성모상은 당근으로 열심히 구했던 기억이.(웃음)

촬영 감독님과는 집의 분위기를 고민하다가 습하고 물기가 스며든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그래서 넝쿨이나 커튼, 이불의 색깔도 약간 곰팡이 색깔로 택했고요.


가장 소름 돋고 인상적인 장면은 안방의 넝쿨이었어요. 특히 효은만의 일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눈에도 똑똑히 보이는 드러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감독님의 결정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드러낼지, 말지.

계속 고민을 많이 했던 지점인 것 같아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표현을 했던 이유는 저는 그런 소설들이나 이야기들을 되게 좋아하긴 하지만, 많은 경우에서 결국 주인공의 사이코 드라마 형식으로 가면 ‘여자들이 미칠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돼요. 그래서 실재하는 공포, 드러나는 공포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해인 배우와 함께 작업한 소감도 궁금해요. 효은의 불안정한 심리를 리얼하게 연기하셨더라고요. 처음에 <밤의 문이 열린다>를 연출하신 유은정 감독님한테 연락처를 받았어요. 바로 미팅을 했는데 저는 그냥 되게 좋은 거예요.(웃음) 해인 배우님은 분위기도 편안한데 평소에는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다가, 연기할 때 집중력을 끌어 올리는 분이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효은이란 캐릭터랑 되게 잘 맞겠다 싶었어요. 나중에 해인 배우님이 말씀하시기를 효은이라는 캐릭터의 톤을 유지해야 하다 보니, 촬영장에서 함께 놀고 싶었는데 못 놀아서 아쉬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글 채소라 (필름다빈 매니저) 그림 정어리 (일러스트레이터)


[다빈씨네 영화방]은 매달 마지막 주, 단편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주로 짧은 러닝타임을 뒤로하고 긴 여운을 남긴 주인공들의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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