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가 죽었다> 심민희 감독 인터뷰
단편영화 <언니가 죽었다>는 컬러풀 한 화면과 재기발랄한 주인공 우주(전여빈) 덕에 역동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심민희 감독이 그 이면에 담은 20대 초반 여성의 애환은 묵직하다. <언니가 죽었다>는 자매에게 찾아온 죽음을 통해 평범한 여성의 삶을 체험하게 한다.
언니의 죽음과 숨겨진 나날들
우주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친언니 우희(황승언)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시나리오의 시작은 무엇이었나요? '동생이 언니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못한다.' 이런 한 줄이 떠올랐습니다. ‘우상의 죽음’ 같은 것들이 연달아 떠올랐어요. 또 여자들이 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상업 영화를 찍게 되면 못하는 걸 해야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졸업 영화였거든요. 자매, 죽음과 슬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뒤섞여 있었네요. 왜 그런 발상들이 떠올랐을까요? 죽음 같은 큰 주제나 사건을 다뤄본 적이 없어서 저도 ‘왜 죽음일까?’ 고민해봤어요. 그 당시 생각은… 아마도 몇 년 전 세월호 사건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어요. 더불어 내 지인이 죽으면 나는 바로 슬퍼할 수 있는 인물일까? 자문해봤어요. 아닐 것 같더라고요. 바로 슬픔에 잠기지 않는 우주의 태도가 굉장히 솔직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주변 친구들과 여빈 배우님의 말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주의 태도가 제가 슬픔이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많이 닿아있대요. 여빈 배우님도 우주를 저라고 생각하고, 저를 많이 관찰하면서 연기했어요.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일까요? 죽음은 멀게만 느껴져서 바로 슬퍼하는 게 되려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되었어요. 이 부분은 공부 중인데요. 슬퍼하는 과정 안에서 철저히 혼자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담을 같이 지우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 미안함이 들고 좋은 것만 나눠주고 싶은 강박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슬픔은 온전히 저 혼자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라고 생각했고, 그게 자유를 위한 한 조건이라고도 생각했어요.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고 있지만요. 죽음을 취업준비, 사회생활과 연결 짓게 된 계기도 있을까요? 왠지 저는 우주의 여정을 써내려 가는 과정에서 20대였던 저와 제 친구의 삶 일부가 은유적, 대유적으로 표현되길 바랐어요. 제게는 지방에서 같이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이 살의 중요한 영감의 원천인데요. 그 친구들이 저보다 일찍 사회생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한 적이 있어요. '빛깔을 잃고 있구나' 하고요. 제 마음대로 오만하게 생각했죠. 지금은 바뀌었어요. 순간적으로는 빛깔을 잃는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훌륭한 생명체, 자정 능력이 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빛깔 잃었다'는 것 조차 저의 해석인데 섣부른 판단이 무섭죠. Do not judge~
남녀노소 불문한 관객에게 20대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첫 영화 <홍제천 후리덤>으로 또래 친구들의 일상 얘기를 했을 때, 생각보다 20대 여자아이들의 고민과 고충 대중에게 이해받거나 설득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사랑스런 내 친구들, 내 또래의 이야기를 아빠나 삼촌 같은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이해될 수 있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왜 여성들이 연대하고 힘을 모으는지에 대해 설득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여성들의 삶에 꾸준히 관심이 많은데.. 여성들 안에서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여성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우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평소에 그런 생각을 조심스레 하는 것 같아요. 여성은 여성대로, 남성은 남성대로 사회의 선입견 안에서 때때로 피해자인 것 같아요.
전여빈, 황승언, 조현철… 캐스팅도 화려해요. 배우들이 작품에 합류하면서 나눴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우희가 제 머릿속에서는 제일 먼저 황승언 언니랑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인의 지인이라 제가 알바하던 가게에 한두 번 오셨었는데, 화려한 외모의 언니인데 저는 왠지 자꾸 안아주고 싶더라고요. (웃음) 좋은 에너지로 느껴져서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반면 우주는 정해진 이미지 없이 정말 열심히 찾았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여빈 씨 사진을 우연히 보고 연락처를 얻어서 용기 내 연락했죠. 제가 인스타그램으로 여성들을 보는 걸 좋아해요. 여빈 씨는 한 번도 죽음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우주로 사는 게 자신에게 중요한 도전이라고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로드무비처럼 우주가 한 사람씩 만나고 다니는 구성인데, 장르는 어떻게 구상했나요? 편집본을 본 학교 선배가 '오즈의 마법사' 같은 이야기 틀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 게 생각나네요. 저는 장르보다 제일 먼저 생각한 건 캐릭터극! ‘우주가 장르다’라고 생각했어요. 우주의 마음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코미디와 판타지는 ‘우주스러움’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거 같아요. 하나의 뚜렷한 장르를 띄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우주는 이제 막 죽음을 경험해봤고, 20대 여성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캐릭터인데 우주 자체가 영화의 장르가 되기를 바랐어요. 미쟝센도 화려하고 인상적이에요. 특히 우주의 옷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민희 언니 처음 봤을 땐 생생한 빨강이었는데 어느새 버건디 색이 되어있어.” 학교 다닐 때 친한 동기한테 이런 말을 들었어요. 그게 출발이었나 봐요.
옷 색깔대로 우희는 빨강이고, 우주는 맑은 노랑인데요. ‘노랑이 빨강에 다가가려고 애를 쓴다, 빨강이 자신에게 좋은 건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러다가 자신의 노랑을 되찾는다.’ 이게 의상에 대한 컨셉이었어요. 우주가 방바닥을 뒹굴면서 우희를 바라보는 오프닝 시퀀스도 컬러풀해요. 첫 공간은 우주와 우희가 교감하던 어린 시절, 우주가 우희를 멋있게 생각하던 그 시절 향수가 있는 분위기를 양껏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회에 비친 언니도 아니고, 객관적인 우희도 아니고, 우주의 세상 안에서 아름다웠던, 동경의 대상인 언니와 함께한 따뜻했던 날이요. 마지막으로 2021년에도 우희와 같은 여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감히 할 말이… 우린 혼자가 아니고 제가 곁에 있어요. 저도 곁에 있고 우린 생각보다 자연과 닮은 훌륭한 생명체라고 말하고 싶어요. 글 채소라 (필름다빈 매니저) 그림 정어리 (일러스트레이터)
[다빈씨네 영화방]은 매달 마지막 주, 단편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주로 짧은 러닝타임을 뒤로 하고 긴 여운을 남긴 주인공들의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