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다빈씨네 영화방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

최종 수정일: 11월 8일

: 서지환 감독 인터뷰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는 습기 가득한 영화다. 이 습기는 헤어진 전 연인에게 우산을 빌리려는 핑계(비)가 될 수도 있고, 이별한 커플의 눈물일 수도, 긴장감에 진땀 빼는 주인공의 그 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남자 주인공 주환의 집에는 어항이 있는데, 그 안에 가득 담긴 물도 왠지 그의 눈물로 이루어졌을 것만 같은 ‘짠내’ 나는 순간들이 이 영화에 담겼다. 슬프지만 귀엽다.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


가을이랑 참 잘 어울리는 로맨스 영화네요. 시나리오는 언제 쓰셨어요?

제 기억으로는 영화를 7월 혹은 8월 여름날 찍었던 것 같은데 시나리오는 4월 혹은 5월

봄에 썼던 것 같아요

여름에 촬영한 영화지만 가을이랑도 잘 어울려요. 사랑 이야기라 그런가. 영화의 시작점이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학교에서 첫 단편을 찍고 나서 아쉬움이 많았어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촬영을 하면서도, 나중에 후반작업을 하면서도 사실 즐겁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영화가 좋아서 시작했으니 즐겁게 영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평소 제가 좋아하는 장르 영화들을 해봐야겠다 싶었죠. 그 때 떠올랐던 게 로맨스였습니다. 물론 사랑의 설렘이나 아름다움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평소 사랑은 시작보다 이별의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우산’ 영화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라는 제목은 사소한 핑계지만 전 연인을 만날 수 있게 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왜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한가요?

누구에게나 사랑의 시작은 설레고 기쁜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별은 제 경험도 그렇고 주변 사람의 경험을 들어봐도 보통 힘들거나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가 많잖아요. 과거를 돌아보면 저 또한 좋은 이별을 하지 못한 때가 많은 것 같아서, 이별에 대한 영화지만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작과 끝은 하나의 연장선에 있잖아요. 그렇다고 좋은 이별이 존재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어찌됐든 마음이 아플 테니까요.




물과 관련된 요소들이 눈에 띄더라구요. 우산과 비, 비에 다 젖은 주인공, 어항, 욕조, 물안경… 혹시 이런 디테일들을 결정할 때 생각하신 게 있으세요?

아무래도 여름과 비가 오는 날이라는 배경을 먼저 설정했더니,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연스레 물 관련 장치들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촬영감독과 촬영 전에 ‘이 영화는 분위기가 중요하니까 습기가 계속 있어 보이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기억이 나네요.

극 중 대사 중에는 지영이 "안 돌려줘도 되지?" 라는 한 말이 계속 맴돌아요. 둘 사이가 ‘툭’ 정리되는 말 같아서, 듣는 주환이 심장이 많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꼽아 본다면?

개인적으로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라는 대사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했던 대사는 여자 주인공이 출근하기 전 현관문 앞에서 한 말이에요. "뭐 잊은 거 없어? 넌 꼭 내가 말해야 하더라."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사소한 연인의 일상적인 대화라서 좋아요. 하윤경 배우가 대사를 위트 있게 잘 쳐줘서 그렇기도 하구요.

하윤경 배우 연기가 너무 좋아요. 차기작 <저 ㄴ을 어떻게 죽이지>에서도 함께 하셨죠.

하윤경 배우는 영상에 자기가 어떻게 나오는지, 그리고 연출을 했던 제가 어떤 부분을 요구하면 정말 정확하게 캐치해서 영상에서 표현을 해줘요. 이 영화를 찍을 때는 하윤경 배우가 그래서 지영은 전 남자친구 주환이랑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인건지 아닌지 물어봤던 기억이 나네요

'우산' 영화를 찍은 이후에 <저 ㄴ을 어떻게 죽이지?> 라는 영화를 기획할 때는 애초에 하윤경 배우를 생각하고 썼어요. 사실 저는 시나리오를 배우들에게 보여주고 굉장히 디테일한 이야기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은 아닙니다. 재미가 있냐, 없냐를 우선으로 두고 이야기 하는 편이에요. 워낙 똑똑하고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서 제가 원하는 것을 다 캐치해줘서 제가 현장에서나 프리를 진행할 때 즐겁고 쉽게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쿠키영상이 있었어요.

쿠키 영상이요?

남자 주인공이 나중에 본인도 비를 홀딱 맞고 지영의 집을 노크하는 신이 있었는데요. 실제 촬영도 했는데 편집을 하자마자 그 신은 넣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주인공 각자의 새로운 사랑에 대해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상과 상상 신은 현실적인데, 이 영화에서 시소 장면은 판타지적이고 독특했어요.

연인과의 사랑에 대해 다루는 영화에서 베드신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전체적으로 귀여운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베드신을 좀 판타지적인 장면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사랑을 나누는 게 환상적이기도 하니까요.

역할이 찰떡 같이 잘 어울렸던 오동민 배우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오동민 배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말 말 그대로 반했던 것 같아요. 이 캐릭터에 딱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에도 배우 분들을 섭외할 때 직접 만났을 때 저는 연출자로서 반하게 되는 감정을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보통 그 촉이 맞더라구요. 주환의 직업은 작가로 정했는데, 아무래도 그 당시에 제가 영화학교를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어서 그렇게 정한 것 같아요.

감독님 생각에 사랑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지만.(웃음)

어렸을 때는 영화나 음악에서 ‘왜 이렇게 사랑 이야기만 해댈까’ 하고 싫어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한 살 먹어갈 때마다 사랑에 대한 가치를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데요. 우스갯소리로 그런 질문을 하고는 합니다.

‘평생 영화감독으로 살아갈 수 있고 명예와 인기를 누리기 VS 영화를 그만둬야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기 살기'. 저는 일초의 고민 없이 후자를 택할 것 같아요.

글 채소라 (필름다빈 매니저)

그림 정어리 (일러스트레이터)

[다빈씨네 영화방]은 매달 마지막 주, 단편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주로 짧은 러닝타임을 뒤로 하고 긴 여운을 남긴 주인공들의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