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다빈씨네 영화방 <기사선생>

최종 수정일: 5월 2일

: <기사선생> 김서윤 감독 인터뷰


다신 밟지 못할 땅에서 마음을 나눈다는 것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직전, 남한의 청과물 유통업체 기사 성민(배유람)은 개성공단 식당에서 북한 담당자 숙희(윤혜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대만 로맨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기사선생>은 ‘남남북녀’의 풋풋한 ‘썸’을 그린 단편영화다.


가장 뼈아픈 우리의 역사인 분단 현실을 조명하면서도 그 안에 자연발생적으로 불시착한 애틋한 마음. 이제 둘 곳 없어진 그 마음은 이제 어디로 갔을까? 김서윤 감독에게 인물들의 안부를 대신 들었다.


남남북녀의 단도직입적인 로맨스

성민과 숙희의 만남이 귀여워요. 첫 만남 어떻게 연출하고 싶으셨어요?

일단 성민은 낯선 땅으로 넘어갔잖아요. 누구든 북한에 갔다면 겁을 먹을 것 같았어요. 성민이 되게 눈도 못 마주치고 되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 걸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혼자 겁먹어 가지고 쭈뼛거리는데 그 와중에 여자한테 반하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어요.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든 모습을 조금 웃기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화의 매력 포인트 하나가 유머였어요.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통일영화 제작 지원작’이라는 자막이 뜨고 시작하는 영화라 무겁게 다가올 있었는데.

저 자체가 그렇게 무게감이 있지는…(웃음) 어쨌든 멜로 드라마고 젊은이들의 사랑이잖아요. 조금은 가볍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전 시나리오에는 성민이 손가락 하트 가르쳐주는 장면도 있어요.


‘남남북녀’ 캐릭터 성격 차이도 눈에 띄더라고요.

숙희는 성민을 처음 보고 “쟤 왜 저래?” 생각했을 거예요. 성민은 자기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로 생각했어요. 어리바리하고 키도 작고 수줍음도 많고요. 그래야 개성공단이 갑작스럽게 폐쇄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행동 변화에 진심이 관객들한테 보일 것 같았어요. ‘숙희를 향한 마음이 이 정도구나’ 생각할 수 있잖아요. 반면에 숙희는 북한 여자로서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여성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로맨스 표현은 무척 순수하면서도 감성적이었어요. 영감받은 영화가 있어요?

(컴퓨터) 드라이브에 있는 영화들이 다 참고가 되는 영화들이어서… 어릴 때부터 멜로 드라마, 영화를 좋아해서 많이 봤어요. 홍콩 영화 <첨밀밀>(1997)은 콘티 단계에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두 인물이 마주 서서, 서로 느끼는 감정을 찍을 때 카메라 위치나 움직임을 참고 했어요. 감정을 잘 보이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6)도 많이 봤어요. 중국이나 대만, 일본의 잔잔한 로맨스를 많이 찾아봤던 것 같네요.


제가 영화 중에는 <민우씨 오는 날>(2014)이라는 강제규 감독님 단편영화도 생각났어요. 꼭 한번 보세요!

아 정말요? 꼭 볼게요.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

검문소 모든 장면이 북한 배경이잖아요. 촬영 장소는 어떻게 섭외했는지 궁금했어요.

아, 촬영 장소가 되게 많았어요. 제작비가 적으니까 저희가 꾸밀 수 없기도 하고, 진짜 북한처럼 보여야 영화도 설득력 있을 것 같아서 발품을 좀 팔았죠. 첫 장면은 실제 파주에 있는 남북 출입 게이트, 군사지역이었구요. 창고는 제가 다녔던 학교 세트장, 공장과 개성공단 사무실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공장이에요. 식당 안은 또 안산에 있는 곳이에요. 촬영은 4회차여서 도시들을 오가다 보니 못 찍은 신도 생겼어요.


생각지도 못했어요. 못 찍은 신은 어떤 내용이었어요?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모두 보따리를 싸서 떠나는 장면이었어요. 그 난장판 같은 상황에서 숙희를 찾아 돌아간 상민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어요. 상민의 마음이 많이 혼란스러울 것 같았어요. 창고 안에 숙희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지금 눈에는 숙희가 안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다 떠나고요. 실제로 그 당시에 나온 뉴스 자료 화면을 많이 봤는데 뭐라도 챙겨 나가려고 봇짐을 동여맨 사람들의 풍경을 꼭 영화에 담고 싶었어요. 제가 로맨스 영화를 쓰긴 했지만 개성공단 폐쇄 자체는 되게 현실적인 문제여서, 사회의 잔인함을 그려 넣고 싶었거든요.



하긴 ‘분단’이나 '통일'이란 단어가 역사책에만 있는 말이 아니라 현실이었죠.

제가 인터뷰를 했어요. 실제로 10년 이상 개성공단에서 일하신 분과 전화로요. 서로 사랑을 했던 연인들만 이별한 게 아니고, 서로 정을 나눴던 동료들도 제대로 인사 못 하고 못 보게 됐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좀 안타깝더라고요. 개성공단도 서로가 함께하는 하나의 공간이었는데, 사라져버린 거죠. 인터뷰해 주신 분이 ‘나한테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성민과 숙희의 근황은 어떨까요? 상상해볼까요?

우리가 지금 ‘코로나 언제 끝날까?’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들도 ‘우리가 언제 만날까? 언제 공단이 다시 열릴까? 재개되긴 되겠지?’ 하고 생각할 것 같아요. 둘 다 잘살고 있을 거라고 가끔 서로를 떠올리면서요.


글 채소라(필름다빈 매니저)

그림 정어리(일러스트레이터)

[다빈씨네 영화방]은 매달 마지막 주, 단편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주로 짧은 러닝타임을 뒤로 하고 긴 여운을 남긴 주인공들의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